탕안에서 이리저리 둘러봅니다...언젠가부터 동네 목욕탕엘 가면, 온탕이나 냉탕안에서는 항상 내부에 있는 사람들을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50대 정도의 아저씨가 반쯤 구부린 상태에서 대충봐도 자기보다는 더 늙어보이는 아저씨(할아버지)의 얼굴을 씻기는게 보입니다. 얼굴에 비눗칠을 하고는 물살이 셀까 손으로 반쯤 방어막을 치면서 얼굴을 헹구고는 머리도 감겨줍니다. 비누와 샴프로 각각 한번씩 문지르고는 깨끗이 씻어냅니다.아래에 있는 늙은 아저씨는 거의 미동을 하지 않는걸로 봐 풍을 맞아 반신불구인 것 같고 그 50대 아저씨의 아버지인 것 같습니다...
사우나 도크안에서 맑은 유리창 너머를 보니 아까 그 아저씨의 모습이 또 보입니다. 탕 바깥 탈의실에서 탕안 오른쪽 구석을 열심히 주시하고 있는 것 같아 뭘 보나 싶어 시선을 따라 갔더니 때밀이 아저씨에게 맡긴 아버지를 보고 있더군요. 염려스러운 눈초리로...
탕밖에 나와 탈의실에서 옷을 입는데 저 건너편에 또 그 아저씨가 보입니다. 70은 넘어 보이는 아버지 얼굴에 스킨을 발라주고 로션을 발라주는데 그렇게 정성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굵은 주름이 부적처럼 패여 있는 주굴주굴한 얼굴에 빈틈없이...
다음엔 옷을 입힙니다. 팬티와 내의는 원샷에 나머지는 불편하지 않도록 아주 천천히...
난...저런 아들은 이미 물건너 간 것 같고 저런 아들을 둔 아버지는 될 수 있을까...? 아쉬워하고 부러워하던 중에 불현듯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란 노래가 생각납디다. 해서 그날 이후로 한동안 내 노래의 십팔번은 그 노래가 됐죠.
꽤 오래전에 홈피에 썼던 내용인데...조금전에, 지난달에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과 목욕탕에서 봤던 그 아름다운(?) 영상이 겹쳐 생각나길래 다시한번 기억 되살려 써봤습니다.
오래된 것은 아름답다고 합니다. 거기에는 세월의 흔적이 배어있고 그 흔적에서 지난날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기 때문인데 아마 가장 오래된 것은 가족, 부모일 것이고 그래서 그 사람들이 가장 아름답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너무 가까이 있어 그 소중함을 잊기 쉬운 존재들...하여 가장 소중하고 가장 아름다운 것은 가장 가까운 데 있다고 하는 모양입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나니 '지금부터라도'라는 말을 다시는 할 수 없다는게 가장 가슴 아픕니다.
한때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죽음 목전까지의 경험도 해봤는데 막상 죽음이라는 것을 직접 피부로 느끼게 될 때 갑자기 너무 무섭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해서 그 때 이후로는 죽고싶다라는 말은 아예 꺼내지 않게 됐는데... 그 때 왜 그렇게 죽음이 무서웠냐면 '죽음이라는게' 어제까지 맺어왔던 인연들을 한순간에 놓는거라는 것과 형편이 되면 정말 잘해주고 싶은 사람들에게 아무 것도 못해주고 떠나는 것이 죽음이라는 것을 순간 느꼈기 때문이었죠...말이 옆으로 새버렸네 쩝. 암튼...
자식 몰래 통증과 신음을 혀밑에 감추고 살아오신 부모님들...생존해 계실 때 잘하시길 바랍니다...나처럼 후회하지 않으려거든... |